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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창시절
1970년 초등학교 3학년 우리 식구는 아버지를 따라 경상북도 풍기에서 강원도 사북·고한이라는 탄광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탄광의 갱구에서 가깝게 있었고 갱 입구, 폐석장, 갱목장, 공기 압축실, 목욕탕, 검탄실, 공작실, 작업대기소, 캐프(안전등)실 ……. 등등의 탄광시설은 나의 놀이터였고 나의 얼굴은 광부들과 같이 까맸다. 폐석장의 폐목을 주워 모아 연료로 사용하였고, 개탄을 주워 모아 연탄을 만들어 연료로 사용하였다. 광부들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였고. 여름에 더울 때면 갱의 입구에 앉아 갱의 밖으로 불어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광차의 베어링 구슬을 모아 구슬놀이를 하고, 구슬을 나무토막에 밖아 팽이를 만들어 팽이치기를 하였다. 고한역 맞은 편 해발 842미터에 있는 당목탄광과 해발 712미터에 있는 경일탄광은 사실상 나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갱의 입구의 캐프실 앞에서 놀고 있던 중 광부들에 의해 광차에서 실려 나오는 아버지를 목격하였고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곧장 어머니에게 달려가 알렸다. 우리식구 모두는 아버지를 보기위해 병원으로 달려갔고 다행히 아버지는 갈비뼈 몇 대가 골절되었다. 병원에는 많은 광부들이 부상을 당하여 치료 중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광부들의 수많은 부상과 사망소식을 들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2. 철학에 관심
고등학교 2학년시절 친구를 따라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여 이후 계속 연줄에 의하여 예비신자로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성당의 성직자와 교회책자 등의 자료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아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3월 서울로 재수를 하러 올라갔다. 4월에 집에 다녀오면서 사북역의 기차 안에서 사북민주항쟁을 목격하였고 서울에서 학원에 다니면서 '서울의 5월 민주화의 봄'을 목격하였다. 그 민주화의 봄에 전투경찰의 최루탄에 허덕이고 곤봉에 맞는 대학생들을 목격하였고, 계엄군에 의해 오리걸음으로 끌려가며 발로 차이고 곤봉에 맞는 대학생들을 목격하였다. 머지않아 대학생이 될 나에게 있어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이 대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대외적인 적들에 대항하여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할 군인들이 대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본 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 정신이 혼란한 상태에서 독서실 바닥에 누워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가 독서실 책상 밑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음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감성과 이성" "나는 어디로부터 왔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디로 가는 걸까?" ....... 등등 어느 독서실 선배가 남긴 글인지 모르지만 당시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 이후로 필자는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비롯하여 온갖 삶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친구나 사회 선배들에게 인간의 삶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책과 관념론의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나에게는 대학진학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가?’, '인간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가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해답도 찾지 못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삶의 목적도 모르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대학 진학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포기하고 방황과 모색을 시작하였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현실적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일단은 대학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학에 들어갔다면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자본주의" 혹은 "노동주의"라는 일원론적 획일적 사상을 배웠을 것이라 생각하니 당시 대학을 포기하고 방황과 모색을 시작한 것이 비록 지금까지 어려운 삶을 영위하게 했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3. 철학에서 실천으로
20대 초반을 소위 인간의 삶에 대한 관념적 종교적 철학에 젖어 회의와 비관 속에 방황하며 보냈으나 또 한편으로는 천주교회 예비신자로서 틈틈이 성직자와 교회선배와 교회책자로부터 사회현실과 사회문제에 대해 접하고 있었고 점차 노동, 사회, 정치, 경제 등의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념적 방황이 지겨워지기 시작할 무렵 광부인 아버님의 소개로 광업소에 취직하게 되어 인간의 참혹한 삶의 현실로 다가가게 되었다. 나의 직업은 광내의 고인 물을 양수기를 통해 갱의 밖으로 퍼내는 양수공으로 다른 광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한 일이었고, 그로인해 항상 다른 광부들에게 미안함을 갖게 되었다. 이런 미안함은 내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탄광노동자로서 노동자의 현실을 깨우쳐 가고 있었고 사회운동을 통해 내가 찾고자하는 인간의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이후 필자는 1988년 까지 광산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해 활동을 했고, 1989넌 노동자와 민중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한겨레신문 지국운영)을 했고, 1989에서 1992년 까지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정당활동(민중당에 참여)을 했다.
4. 구체적 대안 없는 사회운동에 대한 회의
1992년 민중당이 해체되기 까지 당시 학생출신운동권의 사람들이 광산지역에서 정치사회적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광산지역 사회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사상적이 측면에서 학생운동권 출신들과 부딪히는 면이 많았다. 사실 나는 학생출신 운동권에 두 주류 PD(People's Democracy)와 NL(National Liberation)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양쪽 모두와 교합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 필자의 철학인 통일주의 입장에서는 민주는 자주이고 자주는 민주였다. 자주는 세계질서 속에서 국가의 민주주의의 지향이고 민주는 국내질서 속에 민중의 민주주의의 지향인 데 왜 그들이 알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회민중운동의 결말은 당원과 정당의 권리, 즉 국민의 권리를 사유화한 국회의원들의 권력사유화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운동가와 정당과 당원이 국회의원들의 권력사유화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국회의원들의 권력사유화로 결말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이 없는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5. 이념적 사회운동가에서 생계를 위한 노동자와 자영인으로 전환
1992년 민중당이 해체되고 나서 한 가정을 책임지는 동거인으로서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3년간의 서울 지하철공사 착암공을 거친 후 연인과 동거생활을 접고 가죽의류 세탁전문점이라는 자영업을 시작하였다. 광산노동자로서 광산자본가와 대척점에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어 온 나에게 자영업은 사회계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 한겨레신문 지국이라는 자영업을 운영할 때는 언론민주화운동을 하는 젊은 사회운동가로서 입장만이 존재했었다. 젊은 사회운동가로서 삶이 아닌 절체절명의 생계유지를 위한 자영업의 시작은 사회계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는 비정상적인 인간이고, 자영인(노동자이면서 자본가)이 완전한 인간임을,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은 노예가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임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은 있을 수 없음을, 나의 사회운동이 계급투쟁이었지 계급폐지투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구소련, 중국, 북한, 쿠바 등에서 계급투쟁의 결과로 당연히 계급사회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계급사회인 전체주의의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탄생됨은 깨달았다.
6. 인간의 삶의 목표 = 이원(二元)론의 통일주의
필자가 인간의 삶의 목적에 대한 물음을 던진 1980년에서부터 1992년 민중당이 해체되기 까지 관념철학에서 실천철학을 거치면서 확립한 이념이 통일주의이다. 당시 필자는 인간의 삶의 목표를 [통일주의]로 규정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운동의 조직생활을 거치면서 특히 전국의 민중당내에서 다수의 활동당원을 가진 지구당의 조직부장과 사무국장을 거치면서 필자는 당원대회를 최고의 가치판단기관으로 규정하는 당의 조직도를 머리에 그리고 있었으며 이런 경험들을 기초로 하여 국민총회(총선)를 국가의 최대 가치판단기관으로 하는 국가조직을 구상하고 있었다. 나의 꿈은 당시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의 목표를 밝히고 그 방법론을 제시하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단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통일주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1999년 까지 생계전선에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었으나 글의 내용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형식적이었고 통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만족할만한 구체적인 사회제도적 대안들을 찾지 못하고 더 이상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필자의 통일주의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존재의 이원(二元)성과 통일주의
필자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동일시 한다. 인간이 인식한 것은 존재하는 것이고 인식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은 이원성에 기초하여 있고 그 이원성은 상호보완하며 더불어 인식되고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원의 통일은 어느 한 쪽으로의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통합을 의미한다. 통일주의는 이원의 상반된 두 존재는 서로 보완하며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쪽으로 종속화시키려 할 때 상반된 두 존재는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통일주의는 모든 존재는 자신과 상반되는 존재와 대등한 통일을 통해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는 형식적 이념이다.
1-1. 물적 관계(사물관계)에서의 이원론에 기초한 통일주의
안과 밖, 앞과 뒤, 위와 아래, 좌와 우, 낮과 밤, 입자와 파동, 화학과 물리……. 등등 모든 사물적 존재는 이원성에 기초하여 있고 그 이원성은 상호보완하며 더불어 인식되고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1) 안과 밖은 더불어 존재한다.
안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불어 밖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안이 없으면 밖도 없다. 안과 밖은 더불어 인식되고 존재하는 것이다.
2) 동전의 양면은 더불어 존재한다.
앞면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불어 뒷면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앞면이 없으면 뒷면도 없다. 앞면과 뒷면은 더불어 인식되고 존재하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만을 존재시키기 위해 동전의 뒷면을 자꾸 깎다보면 동전 앞면도 뒤면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3) 좌우의 양 날개
좌측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불어 우측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좌측이 없으면 우측도 없다. 좌측과 우측은 더불어 인식되고 존재하는 것이다. 새가 왼쪽 날개로만 날면 곧 곤두박질 칠 것이다.
1-2. 인적 관계(사회관계)에서의 이원론에 기초한 통일주의
너와 나, 개인과 사회, 부모와 자식, 신과 인간, 남한과 북한……. 등등 모든 인적 존재는 이원성에 기초하여 있고 그 이원성은 상호보완적으로 더불어 인식되고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1) 개인(너와 나)과 사회(우리)는 더불어 존재한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이 살고 있을 때 너와 나라는 개념과 개인과 사회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에 두 사람 이상이 존재함으로 해서 나와 더불어 너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개인(너와 나)과 사회(우리)라는 개념도 존재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는 더불어 인식되고 더불어 존재한다.
2) 닭과 닭 알은 더불어 존재한다.(닭이 먼저인가? 닭 알이 먼저인가?)
새가 알을 낳는지? 아닌지? 모른다고 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새가 알을 낳는 것을 보았다. 이 경우 알을 낳은 그 새를 ‘닭’이라 부르면 그 닭이 낳은 알은 ‘닭의 알’이 되는 것이다. ‘닭’과 ‘닭의 알’은 더불어 인식되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 사물과 사실, 전체와 부분은 분리될 수 없다.
닭이란 사물은 여러 사실을 갖고 있다. 뾰족한 부리, 볏, 두 다리, 두 날개, 두 눈, 알을 낳음 …….등등의 사실을 갖고 있다. 닭이라는 사물에서 알을 낳는 다는 사실을 분리시키면 그 사물은 닭이 아니다. 닭과 닭 알을 분리시켜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아닌 지?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물과 사실은 분리될 수 없고, 전체(사물)와 부분(사실)도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물과 사실, 전체와 부분은 더불어 인식되고 더불어 존재한다.
3) 부모가 먼저인가 자식이 먼저인가
결혼한 부부는 남편과 아내이다. 이 부부가 임신을 하여 새끼를 낳았을 때 부부는 부모가 되고 그 새끼는 자식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더불어 인식되고 더불어 존재한다. 부모 없는 자식도 없지만 자식 없는 부모도 없다.
4) 인간과 종교(신)는 더불어 존재한다.
인간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종교는 주로 인간의 죽음과 관련하여 인간의 정서·심리적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 중의 한 방편이다. 인간 개개인은 기성의 종교를 통해서 혹은 다른 자신만의 개인적 방법으로 정서·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종교적 욕구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들 중 부분이고, 죽음과 관련한 인간의 정서·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부분적 방편이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채워야 할 욕구이다. 전체와 부분은 더불어 존재하듯 종교적 욕구는 인간의 삶의 부분적인 것이지만 필연적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정서·심리적 욕구를 갖고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정서·심리적 안정은 산모인 어머니가 채워주는 것이다.
5) 남북의 통일 = 민족의 통일
남과 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뒷면을 계속 깎으면 앞면도 사라진다.
한 쪽이 다른 한쪽을 이기기 위한 전쟁을 통한 흡수통일은 남북한 모두를 망하게 한다. 평화통일의 지향만이 남북한이 공히 민족의 번영을 가져온다.
6) 세계의 통일 = 국가들 간의 통일
남북의 통일과 마찬가지이다. 전쟁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 것이고, 평화는 모두를 승자로 만들 것이다. ‘loser – loser’ 이거나 ‘winner – winner’ 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2. 존재의 내적 속성(영역의 관점), 외적 관계성(점의 관점)과 통일주의
인간은 존재를 내적 속성(영역)과 외적 관계성(점)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사물과 인간을 인식한다. 먼 곳에서 자동차 2대가 충돌하는 장면을 본다면 여러분은 사물들의 외적 관계성을 보는 것이고 이때 자동차는 시각에 2개의 점으로 인식된다. 반면 충돌한 자동차 가까이 접근하여 자동차의 찌그러진 모습을 본다면 여러분은 사물의 내적 속성을 보는 것이고 이때 자동차는 시각에 영역으로 인식된다.
2-1. 사물의 화학적 특성과 물리적 특성
필자는 사물의 내적 속성을 화학적 특성이라 하고, 사물의 외적 관계성을 물리적 특성이라 한다. 사물은 미립자에서 우주에 이르기 까지 화학적 특성과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모든 사물은 화학적 특성과 물리적 특성을 함께 갖고 있다.
1) 화학적 특성 = 사물의 내적 속성 = 사물의 정적인 특성
사물의 내적 속성을 살필 때 사물은 영역으로 보인다. 사물의 내적속성을 화학적 특성이라 한다. 영역, 내용, 공간, 상태, 변화, 입자, 질량, 양자, 재료, 소재, 성분, 크기, 비교 …….등등은 모두 화학적 특성(정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2) 물리적 특성 = 사물의 외적 관계성 = 사물의 동적인 특성
사물의 외적 관계성을 살필 때 사물은 점으로 인식된다. 사물의 외적관계성을 물리적 특성이라 한다. 점, 개체, 시간, 동작, 활동, 파동, 에너지, 광자, 힘, 마찰, 개수, 횟수 …….등등은 물리적 특성(동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3) 물성의 발현 = 질량과 에너지의 발현
화학적 특성의 발현은 물리적 특성을 필요로 하고, 물리적 특성의 발현은 화학적 특성을 필요로 한다. 화학제품이 화학적 특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라는 물리력이 가해져야 한다. 반면 사물이 물리력이라는 에너지를 갖기 위해서는 질량이라는 화학적 특성을 필요로 한다.
세탁원리를 생각해보자. 세제의 내적속성인 화학성분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물리력이 가해져야 한다. 세제가 묻은 세탁물을 손으로 부비든, 솔로 뚜드리든, 세탁기를 돌려 용제로 치든 해야 한다. 반면 손이나 세탁 솔이나 용제(물이나 세탁용제)가 물리력을 갖기 위해서는 화학적 성분(질량)을 가지고 있어야 발현된다.
4) 자연과학의 목적
이와 같이 사물의 화학적 특성과 물리적 특성은 상호보완하며 더불어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의 목적은 사물의 화학적 특성과 물리적 특성을 조화롭게 통일적으로 발현시켜 친인간적으로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참고> 입자(양자)설과 파동(광자)설
자연과학에서 물질의 최소 미립자가 입자인가? 파동인가? 에 대해 논의되어 왔음을 알 것이다. 그 미립자가 성분(질량)을 갖고 있는 영역을 차지하는 물질로 본다면 입자론으로 보는 것이요, 그 미립자가 외적인 관계성을 갖고 있는 움직이는 에너지인 점으로 본다면 파동론으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물이든 내적인 속성과 외적인 관계성을 갖고 있듯이 최소의 미립자라도 인간의 이런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최소미립자가 내적속성을 가진 화학적 성분인 질량인가? 아니면 외적 관계성을 가진 물리적 에너지인가? 는 관점의 차이이다. 최소 미립자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은 정적인 화학적 측면과 동적인 물리적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즉 물질의 최소 단위는 입자이며 더불어 파동이다. 사실 우리는 입자가 없는 물질의 파동이나 움직이지 않는 입자를 가정할 수 없다. 미립자는 사물의 내적속성을 연구하는 화학자에게는 입자로 보일 것이고, 사물의 외적 관계성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는 파동으로 보일 것이다. 화학자는 정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살피는 것이고, 물리학자는 동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의 경계는 무너졌다. 자연과학자는 화학자이면서 더불어 물리학자여야 한다.
2-2. 인간의 개성과 사회성
필자는 인간의 내적 속성을 개성이라 하고, 인간의 외적 관계성을 사회성이라 한다. 인간은 개인에서 세계정부라는 공동체에 이르기 까지 개성과 사회성을 갖고 있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는 개성과 사회성을 함께 갖고 있다.
1) 개성 = 인간의 내적 속성 = 존재가치
개성지향은 생산활동이나 소비생활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능력, 자존감)를 높이려는 성향이다. 개성지향은 자유와 경쟁을 지향한다.
* 생산활동에서 개성지향 = 고유업무 지향(자기 성취지향)
* 소비생활에서 개성지향 = 각자 소비생활 지향(자신의 기호지향)
2) 사회성 = 인간의 외적 관계성 = 관계가치
사회성지향은 생산활동이나 소비생활에서 타인과 관계가치(친목, 신뢰) 높이려는 성향이다. 사회성지향은 평등과 협동을 지향한다.
* 생산활동에서 사회성 지향 = 협조업무 지향(친목지향)
* 소비생활에서 사회성 지향 = 주고받는 소비생활 지향(친목지향)
3) 인간성의 발현
개성의 발현은 사회성을 필요로 하고, 사회성의 발현은 개성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개성(존재가치)의 발현은 사회적 지지와 인정을 필요로 하고, 사회성(관계가치)의 발현은 개인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개발, 자아실현, 안전, 건강 ……. 등등 자신의 존재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 세탁기술이 뛰어나다고 하자. 그 사람의 세탁기술은 그 사람의 내적 속성(개성)이지만 그 사람의 세탁기술의 능력은 인류역사의 지식의 토대 즉 다른 사람들의 지식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소속해 있는 사회가 세탁기술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줄 때 그 세탁기술의 능력은 소용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의 능력은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내적 속성(개성)이지만 그 능력은 사회로부터 발원하고, 그 능력의 가치는 사회로부터 부여 받는 것이다.
*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의 사랑, 친목, 신뢰, 인정, 지지……. 등등의 사회성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이 사회성가치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나의 존재가치인 개성가치가 있을 때 가능하다. 내가 능력이 있어야 남에게 사랑도 베풀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간호할 수 없는 것이다.
4) 사회과학의 목적
이와 같이 인간의 개성가치와 사회성가치는 상호보완하며 더불어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의 목적은 사회구성원이 인간의 2가지 특성인 개성과 사회성을 조화롭게 통일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당시 필자에게 있어서 인간의 삶의 목표는 인간의 2가지 특성인 개성과 사회성을 평등하게 통합시키는 ‘통일주의’였다.
<참고> 남성과 여성
남성은 여성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개성 지향적이다.
여성은 남성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사회성 지향적이다.
<참고> 서양과 동양
서양은 동양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개성 지향적이다.
동양은 서양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사회성 지향적이다.
7. 주관적 사상(사유·신념·믿음)에서 객관적 사회과학으로 전환
2000년 40세 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에 쫓기어 러시아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였고, 언어, 문화의 차이... 등등으로 결혼은 파탄으로 끝났다. 당시 필자는 러시아어의 동사가 2개의 쌍(완료체•불완료체)으로 이루어짐을 알게 된 계기는 필자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이후 필자는 언어는 이원성에 기초하여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미 필자가 밝힌 존재의 이원성과 존재의 내적 속성, 외적 관계성이 언어의 문법의 기초가 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었던 ‘언어는 인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라는 것을 넘어 언어가 ‘인간의 삶의 표현’임을 깨달았고, 언어의 형식이 삶의 형식임을 언어의 내용이 삶의 내용임을 알게 되었고, 모든 학문은 언어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어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학문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삶을 객관화시키고, 인간의 본성을 객관화 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언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언어연구를 통해 철학자의 주관적인 사상(사유·신념·믿음)이 아닌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한 사회과학(정치·경제학)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진리가 사물의 자연스런 본성에 기초하듯이 사회과학의 진리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에 기초하여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이후 필자는 인간의 본성(인간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살필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었고,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객관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사회과학에 몰두하게 되었다.
8. 인간의 삶의 목표 = 인간성 실현
이후 필자는 인간의 삶의 객관적 표현인 언어학, 인간의 신체중추의 가치지향성과 행동지향성을 연구하는 심리학, 인간의 신체생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생리학을 기초로 인간의 본성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언어학, 심리학, 생리학을 기초로 개성과 사회성이 인간본성(인간성)의 구성 성분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개성과 사회성의 통일이 곧 ‘인간성 실현’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은 인간성의 실현이 인간의 삶의 목표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인간본성(인간성)의 실현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필자는 인간의 삶의 목표를 인간의 2가지 특성인 개성과 사회성의 통일이라는 [통일주의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인간성 실현이라는 내용]으로 수정하게 되었다.
언어가 인간의 삶의 표현이고 모든 학문이 언어를 통해 가능하다면 모든 학문은 인간의 삶의 목표 즉 인간본성 실현에 종속되어야 함을 깨달았고, 필자의 모든 지식을 인간본성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하였고 인간본성에 기초하여 인간의 삶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론으로 구체화시켜 나갔다. 인간본성에 기초하여 인간의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인권적 자유와 물권적 자유, 인간의 삶의 과정, 인간의 기본 욕구들, 인간의 신체본성과 닮은 사회시스템....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1980년 민주화의 봄에 인간의 삶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진 이후 40여년 만에 필자는 인간의 삶의 목표와 그 목표의 실현을 위한 방법론을 부족하나마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다.